나의 이야기

[스크랩] 러브레터

안뜰 2016. 1. 27. 09:46

러브레터

 


오늘 아침 초안산 비석공원에서 기공체조를 끝내고 우리 동네 아파트를 향해 걸어오는데, 근처에 있는 중학교로 등교하는 남녀 중학생이 손을 꼭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집에 와 딸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까 딸은

엄마도 참. 난 예쁜 데요? 요즘 애들치고는 봐 줄만 해요.”

그래, 그렇구나.”

하고 딸이 출근하고 난 후에 난 그 옛날 60년대 초였던 내 중학교 일학년 초 내 생애 처음 받았던 연애편지사건을 떠올렸다.

그래, 그때하고 지금은 오십년도 훨씬 지난얘기구나.’

쉬는 시간이 지나고 학업시작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 교과서를 꺼내는데 하얀 봉투가 툭 하고 떨어졌다. 어머 이건 뭐지 하는데 한반 여자애들이 몰려왔다.

누구야? 누구니?”

내가 보기도 전 지들이 먼저 꺼내고 야단들이었다.

이게 뭐야?”

거기엔 우리들이 배우기 시작한지도 얼마 안 되어 읽기 힘든 영어문장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잘 들어오는 단어는 ‘I love you’ 다른 문장들은 사전이나 찾아봐야지, 아는 문자는 별로 없으니 아이들은 얘 누구야?” 이름부터 찾고 난리였다.

그 시절만 해도 연애하는 동네처녀들은 손가락질을 받고 동네 뉴스 꺼리였던 시절이라 난 무슨 놀림을 당한 듯 부끄럽고 창피하기만 했다. 그런데 웬걸 계속해서 자꾸 자꾸 몇 통인가 그 편지가 가방에 들어 있자 난 화가 치밀었다.

나이가 동갑이며 초등학교 중학교 한반에서 공부해온 칠촌조카에게 그 편지를 돌려주라고 부탁했다. 조카하고 둘이는 꽤나 친했는데 그 일로 다투었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둘은 지금도 친한 모양이다.

 

지난 오월 어느 일요일 그 조카가 딸을 시집보낸다고 연락이 와 의정부에 있는 결혼식에 갔다. 오랜만에 친척조카들하고 회포를 풀고 식을 끝내고 위층에 있는 피로연 자리에 갔더니, 거기엔 초등 중학교 남녀동창들이 한가득 이미 식사는 끝내고 삼삼오오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가니까 여기저기서 남자 동창들이 악수를 하자 손을 내밀었다. 그곳에 옛날 편지의 주인공이 손을 잡고 말했다.

반갑다, 숙아. 너 동창회에 가끔이라도 나오면 안 되겠니?”

옆에 앉아 있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동창아이도 한 마디 덧붙였다.

옛날에 저애가 너 좋아한 것 우리 다 알고 있어. 나도 너 좋아했는데 저애가 좋아해서 난 그만 두었어.”

여자들은 저만치 있고 그 사건을 알고 있는 애들도 없는 듯했다.

편지를 보내던 그 시절 생각이 났을까, “숙아 이거 먹어하며 혼자식사를 하는 나에게 디저트를 챙겨주었다.

헤어지기가 아쉬운 동창들은 우리 이차가자 웅성웅성 어디로 가려고 하는데, 여자 동창하나가 교회에 가야한다며 일어섰다. 나도 가야해서 다음에 또 언제 봐하고 헤어져 서울로 오는 전철에 여자동창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순간 그 편지의 주인공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 “? 왜 왔어?”

내가 묻자 그 아이는

~. 약속이 있어 노원역에 가는데 창동에서 내릴 거야.”

그래, 잘 가. 언제 기회 오면 다시 보자.”

그래, 또 만나.”

악수를 또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피식 웃음이 났다. 옛날 학생시절 못 부른 내 이름 숙아 숙아 몇 번이나 하던지. 푸르른 오월 창공으로 기억들을 날려 보내며 돌아왔다.

 

그래 아무개 너 잘 살고 또 행복해라~~~~~~~~~~~.

- 너의 첫사랑 숙이가.

 

출처 : 아름다운 60대
글쓴이 : 아침산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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