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항아리가 잿더미에 빠진날
내가 어린시절을 보내던 농촌에서는 밀주단속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때 동네사람들은 그단속원들을 술조사라고 칭했던 기억이난다
면사무소가 한 20분, 지서가[지금의지구대]15분정도 쯤 떨어져있었던 우리동네 가구숫자는 한이십여채가 넘을듯했던 동네였다 ,
단속원들이 들이닥치면 술조사 떴다고 동네사람들이 울타리넘어로 소근소근대고는 했다.
차들이 오가는 행길에서 논밭길 사이로 들어서서 윗길과 아랫길 이나 있었는데 우리집은 아래길쪽에서 두번째집이니
동네입구나 다름없었다,대문을 들어서면 낡은 광으로 쓰던 사랑채가 있고 그옆으로 외양간이 자리잡고 있고
안채는 ㄱ자집으로 육이오 사변에 다 타버리고 새로지어 방이 네개나되고 마루가 빤짝반짝 집좋다고 오는사람마다 부러워했다,
안방아래쪽으로 커다란 부엌이있고 그옆 외양간을 돌아가면 부엌뒷문으로 나와서 물을 버리는 개수대가있고 넓적한 주춧돌 비스무레 큰돌위에는 요강을 놔두었는데 오줌을 받는 큰 항아리가있고 채송화가 잔뜩핀 몇걸음뒤에 뒷간 변소[便所]가 있었다.
그시절에는 농촌누구네집 할것없이 인분[소대변]으로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인가 우리집 변소는 무척컸었는데 한편에는 불을 때고 남은 재를 가져다 쌓아놓는 잿간과 그옆에는 대변을 보는 시멘트로 만든 커다란
사각분뇨 탱크같은 위에다 널판지를 가운데는 비키고 죽놓여있어 볼일을보다 밑을 내려다보면 매우 무서웠다.
변소 문짝은 제대로 맞춘 문이아니고 아버지가 대충 만드신분으로 볼일보며 옆으로 힐끗보며는 바로앞 석류나무랑 작은 텃밭을 지나
장독대랑 그뒤에 배나무가 보이고 그뒤 울타리까지 살짝 보이는 허름한 문짝으로 거기앉았을때 다른 식구들이 오며는 안과 밖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는 할정도였고 깜깜한 밤에 변소를 갈라치면 아주어려서는 엄마한테 밖에 서있으라 했고 동생과 조카들이
어느정도 컸을때는 꼭 둘이가서 한사람은 빨리 좀 나오라고소리를 치고는 했다,
변소앞에서 서성이며 같이 있어주는일은 지루하기 짝없는 재미없는 일중에 하나였다
,
어느한 날이었다, 엄마 올케언니 동생 조카 이렇게 집에 있었던걸 난 어렴프시 기억하고 있다
옆집아주머니인지 누구인지 술조사가왔다고 귀뜸을 해주었는데 그때 우리집 안방 한 켠에서는 막걸리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
엄마와 올케언니는 막걸리항아리를 부등켜안고는 외양간옆 부엌옆길을 내달려 뒷간으로 들어가 그잿더미에 술을 쏟아버리고
항아리까지 잿더미에 묻어버리고 개수대 옆에 놓여있던 요강을 변소안으로 밀어놓고 우리엄마를 요강에 치마를 내리고 앉아 계시라 하고는
올케언니는 뒤켵을 나와 안마당으로 나왔는데 술조사원이 열린 대문 으로 들이닥치며 여인네들이 뒤곁으로 내닫는걸 힐끗보았는지
뒤켵을 돌아 뒷간앞으로 달려가는데 올케언니가 소리를 질렀다 ,
"안돼요,우리 시어머니가 변소에 계시는데 어디 외간남자가 변소문을 열라고 해요"
그남자는 흠짓해서 차마 문을 못열고 툇마루로 와 앉았다 섰다 를 번갈아 하며 댁에 시어머니는 무슨 변소를 저렇게 오래 있느냐고
집요하게 올케언니를 닦달을 하고 있고 우리 조무래기들은 범죄를 은닉한 증인으로 겁에 잔뜩질려서 저못된 남자가 어여 가주기를
마음졸이고 마루끝에 걸터앉아 숨도 크게 못 쉬고 있었다
지금에사 생각해보며는그때 이십때쯤이었던 우리올케언니는 체구가 작고 소심하기 그지없었던 시어머니와 달리 키도컸고
약간 남성적이 얼굴에 언변도 좋았고 배포도 있었던것 같았다,
댁에시어머니 왜안나오냐고 자꾸만 따져대니까 울 올케언니 " 우리 시어머니가 지금 낙태[落胎]를 하셨는데 외간남자가 버티고 있으니
어떻게 나오실수가 있어요" 우리언니는 하나도 떨지도 않아 보였다.
얼마쯤이나 실랑이를 했는지 올케언니고집을 꺽지못하고 그밀주단속원은 우리집을 나가고 말았다.
다시돌아올까봐 얼마쯤후에 올케언니와 우리 애들은 뒷간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
"어머니! 엄마! 할머니! 나오세요 ! 갔어요!"
냄새나는 뒷간에 오강에 쭈그리고 앉아 얼마나 사시나무 떨듯 떨었는지 엄마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해
언니의 부축을 받고 안방으로가 드러 눕고 말았다.
올케언니는 방에 불을 지피며 저녁밥을 지을때쯤 밖에 나가있던 아버지와 큰오빠가 들어와 자초지종을 듣고는
아버지가 이렇게 내밷듯 한 얘기는 "에잇! 이제는 그 누룩조차 아예 만들지도 말거라........."
그후 언제 밀주령이 풀렸는지 어쨌는지 우리집 안방에서는 때때로 술이 익어가는 냄새는 계속 이어졌다.
시어머니, 며느리 고부 두사람은 하늘 나라 어느곳에서 만나지어 그 숨막혔던 옛날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까~~~
고향집에 어린날이 그리울때면 생각나고는 하는 무수한 추억들중의 하나인 이 이야기가 문득 생각나고
두분도 없고 아버지도 없지만 그냥 고향은 생각만해도 그립고 달려가고픈 곳이고 내가뛰놀며 자라던 그리운 곳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