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의 긴이별후에 짧은 만남
지금부터 세월을 뒤로 돌려 꼭 60년전의 우리집 아침밥상 앞이다 엄마! "우리 선생님 내일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신대" " 아니 선생님이 왜 벼란간 전근을 가셔......" "섭섭하니 너 선생님께 오늘 저녁을 우리집에서 잡숫고 가시라고 하렴" "알았어요~ 엄마! " 그때 난 국민학교 4학년 이고 ㅂ선생님은 3학년에 이어 4학년도 담임을 하고 있었다 그시절 국민학교에서는 담임을 맡게 되면 선생님은 꼭 가정방문을 하고는 했는데 우리동네는 나까지 네명이 한반이고 우리집 부터 오신 선생님들께 "다들르시고 선생님!저히집에서 식사 하고 가셔요" 그렇게 엄마는 선생님마다 식사를 대접하고 6년 맞추고 졸업 무렵엔 학교 선생님 전부를 초대해 식사대접을 했다 ㅂ선생님은 아주 젊은 총각선생님으로사랑과 열정으로 우리를 가르쳐준 분으로 사십여명 전부가 선생님을 좋아했었다 우리를 배꼽쥐고 웃게도 하며 온몸으로 사랑을 다해 교육했던 그 선생님은 정말 잊혀지지 않는 첫사랑의 기억과도 같다 선생님이 지도 했던 우리들연극의 인기로 인근 군부대 위문까지 갔던 기억하며 수많은 기억들과 우리집과의 인연은 좀 각별했다 엄마는 맛난 떡을 해도 선생님 갔다 드리라고 싸주셨고 뒤뜰에 배나무에 배가 먹음직스럽게 익어도 선생님갖다 드려라~ 그렇게 난 학교가는길 선생님 하숙집에들른 일이 종종 있었다 일요일이면 우리집 대문을 빼꼼히 연 학교옆에 사는친구 ㅈ가 "ㅇㅇ아!" 살며시부른다 " 응~ 왔니~들어와!""선생님도 오셨어!" 학교 바로 옆에사는 친구몇과 선생님은 가끔 우리집에 들르셨다 우리동네 반친구들과 합세해 선생님과 우리는 두릎도 따러갔고 개울에서는 천렵도 했다 그때에 필요한 도구나 그릇 ,쌀,된장 고추장은 우리집에서 퍼 날르고는 했다 내가 군에서 열리는 주산경진대회에서 상을 받고 온날에는 잘했다 머리 쓰다듬어 주시려 쫌먼길인 우리집에 한걸음에 달려오셨다가 선채로 되돌아 가신적도 있다 선생님이 우리집에서 저녁을 드시는데 송별회를 준비하던 학교 가까운 친구들이 주르르 우리집으로 달려오고 선생님 하숙집에 과자를 먹으며 우리는 뭔얘기를 했는지 그 기억은 안난다 선생님이 타고 가는 트럭을 배웅하며 우리는 사십여명 전체가 차가 달리는곳으로 따라 걸으며 "선생님! 선생님! '합창으로 목이 메도록 외치다 교실로 들어와서는 모두다 책상에 엎드려 흐느껴 울었다 흑, 흑, 흑 , 엉! 엉! 엉!~~~ 교실이 울음으로 가득차도 우린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그후 삼십년이 지났다 그 시절 동창인 ㅈ와 다른 몇 몇이 ㅂ선생님이 교감으로 근무하시는 서울의 ㅊ초등학교에서 국민학교 동창을 만나게되면 항시 얘기 하며 그리워 했던 ㅂ선생님을 만났다 "야! 이녀석들! 나랑같이 늙어가네 하!하!하! 선생님은 날 보자마자 부모님! 살아계시냐고 물으셨다 "아뇨, 두분 다 돌아가셨어요~ "그래~ 난말이야 암만 생각해도 그때 내가 느집을 너무 자주 갔어.......... 난 그냥 빙그래 웃기만 했다 <그 시절이 생각나.... 우리가 선생님과 헤어지고 통곡을 했단 얘기에 ㅂ선생님은 "나도 30분을 차안에서 울었어!" 차를 돌려 도루 갈까~ 그런 생각을 했다니까~ 선생님의 모습도 우리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 장년의 모습으로 무릎을 맞대고 삼십년전을 회상하며 우리는 옛날이야기로 회포를 풀다 다시 작별을 했다 그러구는 다시 삼십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ㅂ선생님도 퇴임하시고 팝십대의 여생을 보내실터이고 그 국민학교의 제자인 우리도 칠십대의 노년을 보내며 스승의 날이 다가오며는 다시 유년의 추억을 더듬는다 훌륭한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우리 국민 학교 동창들 특별히 성공은 못했어도 어느한사람도 낙오됨 없이 바른 인성으로 제나름대로 다들 이사회에 모난사람없이 잘들 살고 있다 너무 인성이 메마른 세상에 이런 교육자와 이런 제자와의 사이를 잠시 되돌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