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28주년 - 피난살이와 이불
내가 기억하는 유년시절 경기도의 농촌마을인 우리집은 방이 숫자로는 다섯개나 되었는데 언니 오빠들이 결혼해 출가한후 중학교 진학후에 내방을 갖게 되었는데 물려받은 앉은뱅이 책상과 무명천에 녹색으로 물들인 솜이불 한채가 내꺼가 되었다 6.25전쟁이 났을때 우리집은 식량에 이불이랑 살림도구를 소달구지에 싣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다 소달구지와 친척과 헤어지게 되어 빈몸으로 안성에 머물러 피난생활을 하던중 세살이었던 내가 사경을 헤메던 얘기를 열살위에 언니와 그위에 오빠가 전쟁이 끝나고 내가 예닐곱살쯤 되었을때 가금씩 나를 쳐다보며 그시절 얘기를 했다 아니 동네 아주머니들도 나를 만나면 그때에 내 얘기를 했다 "에휴 ! 참 그때 ㅇㅇ 이는 꼭 죽는줄 알았는데...." 동리사람들은 두셋만 모여도 피난살이 얘기를 하면서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가 웃기도 했다가 하며.... 그시절의 화제는 온통 피난얘기가 주를 이었다, 내 어린날의 기억속에는..... 내가 국민학교 일학년때 작은오빠가 군대에 갔다 안방 따뜻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군대에서 휴가 나온 오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들 있었다 얘기는 오빠가 피난시절 머물렀던 그집에 찾아갔다온 이야기였다 그때도 난 너무어려서 그자리에 끼어 앉지도 않았고 대충 줏어 듣다시피 한 이야기였다 오빠가 제대를 하고 얼마후 낯선 아주머니 두분이 우리집을 방문했다 안성에서 오신분이란다 엄마와 올케언니가 버선발로 뛰쳐나가 나가 두사람을 부등켜 안았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이렇게 먼길을 와주시다니..." 엄마는 말을 잇질 못하시고 말주변 좋은 큰올케 언니가 두손을 맞잡고 "얼른 들어오셔요 이리로~~" 안방으로 모시고 푸짐한 밥상으로 대접하고는 밤을 새워 식구들과 피난시절 이야기꽃을 피었다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어, 저애가(우리오빠) 우리집을 찾아왔을때 얼마나 기쁘고 고맙던지..." "그 고생스런 피난시절을 보내고 이렇게 좋은 집을 짓고 사시는걸 보니 너무 고맙고 좋아요" 우리가족들은 그 아주머니댁 방한켠에서 힘든 세월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집이랑 가구랑 하나도 남김없이 폭삭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터 위에 다시 새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때 주신 그이불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왔는지 지금도 잘 덮고 있어요" "그래요! ㅎㅎ" 내가 기억하는 그때에 이야기들 중 기억하는 이야기이다 언니, 오빠 이후로 물려받은 처음으로 나혼자 기분좋게 덮고 자던 그 이불 이야기.... 동네위 가까운 언덕 밭에는 가을 이면 새하얀 목화꽃 이 피고 그 목화송이 솜들을 빼어내 엄마는 솜옷과 이불솜을 만들었다 그래도 피난살이 에서 얻어온 그 이불은 겨울이면 언제나 내가 덮었다 나도 직장으로, 결혼으로, 고향집 떠나고 이어서 두분 부모님도 가시고 제사에 가끔 들려도 장농에는 이불이 잔뜩 쌓여있어도 그 이불은 까맣게 잊고 살았다 목화솜은 다시 틀며는 새솜같아서 화학 제품엔 비길수없이 좋아서 이불천만 바꿔주면 최고 였던 그시절... 이젠 그집을 지키던 큰오라버니와 올케마저도 저세상으로 떠나고 그고향집도 이불도 다 흔적이 없어 졌다 모처럼 세상이 평화의 조짐도 열리는데 아픈 기억 간직했던 우리 친정 집 부모님과 큰오빠 내외는 저 먼 하늘나라 어느곳에서 이 땅을 내려다 볼수 있을런지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며 올해로 68주년의 6,25전쟁을 기억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