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洪水)의 추억(追憶)
요즘은 심심잖게 재난문자가 오고 있다 무더위에 이어 홍수까지.... 간밤에는 띠륵 문자오는 소리에 잠이 깨어 문자를 들여다보니 우리동네 우이천 범람 대비문자였다 우리아파트는 베란다 창문을 열며는 바로 우이천의정경이 펼쳐져 한강변과 비교할수는 없지만 요즘 말로 뷰~ 가 꽤나 좋은편이다 사시사철 일어나며는 베란다로 향해 아름다운 자연과 마주하는 상쾌한 아침을 맞고는 한다 밤중에 일어나 내다본 우이천에는 교량높이에 가까이 찰만큼 무서운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 자꾸만 근접하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귀에 거슬려 두번 쯤 깨어나 내다보느라 잠을 설치고 말았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북한강상류의 우리마을에 방학이 끝날때쯤 들이닥친 추억의 그때를 추억해본다 함께 했던 부모님 큰오빠 내외분 그리고 고향분들은 이미 저 먼나라 로 가신지 오래된 그동네 홍수가 나던날의 기억, 강물이 동네 전답 멀리로 보이던 우리마을은 여름이오고 장마가 시작되면 어른들은 항시 우려속에 보낸다 그날은 장마로 강물이 동네 어구로 밀려들어온다고 애어른이 웅성댔다 우리동내 맨 아래쪽 당숙모님이 사시던 그집에 물이 들기 시작한다고 동내 애, 어른 모두가 그집에 짐을꾸리고 날르기 시작했다 여름 장마가 오면 해마다 위험했던 당숙댁은 마을 중간에 집을 한채 미리 사놓고 준비를 한상태였다 자두나무에 가지가 찢어질만큼 자두가 달려 빨갛게 익었는데 우리애들은 진흙탕 물에 잠겨가는 자두를 바라보며 이사짐을 나르며 "아이구! 저 자두아까워라! " 를연발하다보니 조금 떨어진 윗집 사람들이 뛰기 시작 하고 있었다 자기들 집이 위험하다고 하며 이미 당숙모님은 이사가 끝난후였고 조금저지대인 집들이 전부다 뛰기시작했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뒷집이 우리보다 한결 높아 우리는 그집 사랑방과 마루로 짐보따리를 엄마와 올케는 꾸리고 동생과 나, 조카들 애들이 우리는 어디에서 힘이 났는지 책상에 책 보따리에 자질구레한 살림 살이들은 우리 애들 찾이였다 안젖을 것들은 다락방이나 지붕위나 높은곳으로 치우고 우리는 그밤은 이웃집에서 오지않는 잠을 청했는데 부모님과 동네 어르신들은 광솔(소나무)불로 횃불을 켜고 밤을 지새우며 침투해오는 물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고있었다 전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물이 서서히 줄어들 즈음에 어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물이 서서히 다 빠지고 잠겨있던 논밭이 들어나고 집에 물이 든집은 마당까지나 마루밑까지나 그정도로 물이 들어왔다가 나갔고 우리집도 크게 이상은 없었다 다시 윗집에서 우리집으로 살림살이 보따리를 옮기는데 울애들은 "아이쿠! 힘들어 못 들겠다!" "아이구! 내팔 떨어지네 ㅎㅎㅎ"를 연발했다 어제는 황급히 하느라 어디서 힘이 났는지 모르겠는데 오늘은 못하겠어요 ? 할머니! 엄마!를 외쳐댔다 70년대초 팔당댐이 준공되었다 , 우리동네는 더이상에 홍수 물난리는 없어 졌다 그때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을축년 홍수가 대단하고 무서웠었다고 엄마에게 말씀하시던 생각도난다 오늘아침 일찍 우이천을 내려다보니 무섭게 내려가던 물이다 빠지고 정상으로 흘러가고있다 내가 이동네에서 이십여년 살고있는데 이렇게 우이천에 물이 많이 불어났던 것도 처음이고 이동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곳곳이 자연 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제아무리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이 자연앞에는 무력할수밖에 없는가 싶다. |